데이터분석가

데이터 분석가에서 매니저로, 그리고 그 후...

Jeenee_Lee 2023. 3. 30. 20:22

티스토리에는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데, 그간의 근황이나 신변에 대해서 간단히 써볼까 한다.

 

 

0. 팀장 제의 (2년차)

현재 재직중인 회사는 내 커리어의 첫 회사로, 이제 5년차에 접어들었다. (학부시절 다른 회사에 재직한 이력이 있으므로 인생 첫 회사는 아니다.) 입사하고 짧은 교육 프로젝트 하나, 10개월 정도 진행한 긴 프로젝트 하나를 마치고 이제 막 2년차에 접어들던 시기에 팀장 제의를 받았다.

 

당시 학교 선배이자 직장 선배였던 동료와 같이 팀을 나눠 맡았으면 좋겠다는 오퍼가 있었고, (같이 제의를 받지 않은) 다른 학교/직장 선배도 있었는데 왜 나한테 제의를 했나, 라는 고민도 했으나 이미 C-level에서는 내가 더 낫다는 판단하에 제의한 거라 생각하고, 같이 제의 받은 동료가 의지되는 사람이었기에 같이 운영하면 나도 성장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수락했다.

 

1. 프로젝트 수행하는 팀장 (2년차)

팀장이 된 후에는 업무 중에도 팀원들을 관리하기 위해 시간 할애가 필요했고, 팀원들이 수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현장에도 가서 커피 한 잔, 식사 한 번 사주려면 팀장은 본사에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디 사람 일이 뜻대로 되던가... 두 팀장 모두 발령되던 해, 각자 다른 프로젝트에 상주근무로 투입되었다. 당시 본부장도 있었지만 프로젝트 현장엔 이슈 있을 때만 방문했고, 심지어 그 이슈를 대신 해결해주지도 못했다. (의미없는, 교과서적인 답변만 되풀이했다.)

심지어 둘다 각각 혼자서... 매우 외롭고 모진 싸움(?)이었고, 이 경험으로 나는 두 번 다시 '혼자' 투입하는 프로젝트는 진행하지 않는다. 다른 부서라도 적어도 2명 이상으로 팀을 구성한다.

 

결국 조직구조상 본부장이 있었으나 의미가 별로 없었고, 팀장도 있으나 공석인 불안정한 상태였다. 다행히도 이 당시까진 규모가 크지도 않았지만 퇴사자도 별로 없었다.

 

2. 동료의 퇴사와 빈자리 (3년차)

그리고 다음 해, 입사 3년차, 팀장 2년차에 접어들 무렵, 본부장이 교체되면서 더 믿음직하고 내가 속한 조직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오게 되어 3명이서 같이 잘 리딩하면 되겠다..고 생각할 시점에 같이 팀장을 맡았던 동료가 이직을 한다고 알려왔다. 술자리에서, 혹은 사담을 나눌 때 지나가는 말로 '이직할거야'는 말은 뭐... 누구든 쉽게 할 수 있지만, 진심으로 이직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날 두고 간다는 배신감도 들었고, 이 동료를 제대로 붙잡지 못한 회사도 원망스러웠다. 그만큼 많이 의지했던 동료였다.

 

그렇게 팀장 2년차에 대략 20명 정도 되는 팀원을 본부장과 둘이서 매니징했다. 사실 그정도 되는 규모의 조직을 관리해본 적도, 관리를 받아본 적도 없는 입장에서 내가 잘 하고 있는지 불안감이 매우 컸다. 팀원들이 바라보는 본부장과 팀장의 역할이 다를 뿐더러, 아무리 본부장이 편하게 해준다고 해도 직책이 주는 무게감, 그리고 연령대는 나와 팀원들이 더 비슷한 또래였기에 한계점은 있어보였다. 

팀장이 되고보니 이런 책이 참 많다.

 

3. 시니어 동료와 본부장의 부재 (4년차)

회사에서 일련의 사건(?)으로 시니어급의 좋은 동료가 많이 입사했다. 외국계 대기업 재직 경력 등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분들이었고, 그런 커리어와 비교했을 때 거만하다거나 자만하는 자세가 아니라 실무에도 적극적으로 임하는,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분이 본부장 위에 그룹장으로 앉게 된다.

 

문서 작성이나 조직 운영 등 다른 회사에서도 일반적으로 있는 노하우들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고민거리가 있을 때 편하게 고민상담할 수 있는 분들이었다. 정답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선택지라도 제시해줬으며 이를 변형하거나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던 와중, 본부장이 갑자기 휴직 선언을 했다. 3년차에 겪었던 동료의 퇴사...만큼은 아니지만 회사나 조직 이해도를 봤을 땐 상당히 의지했던 분이기 때문에 많이 당황했다. 근데..?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면 뭐하나. 내 결재를 받아 휴직할 사람도 아닌데.... 빠르게 수긍했고, 잘 쉬고 돌아오라고 인사를 전했다.

 

4. 본부장 제안 (4년차)

본부장이 휴직에 들어간 직후, 그룹장은 나에게 본부장 자리를 제안했다.

그룹장 입장에서는 언제 복직할지 확답이 없었고, 기간도 길어서 그 기간동안 공석으로 둘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 팀장 구성과 팀원 재배치 등을 같이 고민해보라는 얘기를 전했다.

 

답변을 미뤄두고, 우연히 대표님과 단둘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생겨 이 얘기를 전했다. 근데 동의, 부정 등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를 나는 '나도 그 제안에 동의한다.'라고 받아들였다.

 

팀장 제안과는 달리 본부장은 직책도 더 높고, 본부장이라는 직책에 비하면 사회 경험이나 나이도 적기 때문에 고민이 더 길었다. 당시 우리 본부에는 고문(?)같은 역할을 해주시던 분이 계셨는데, 조심스레 고민상담을 했다. 제안을 받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고민이 된다고.

 

그 분은 너무 좋은 의견이라고, 내가 적임자인 것 같다고, 본인이 많이 도와주겠다고 응원하셨다. 그리고 시니어 동료들도 도와주겠다며, 같이 잘 해보자고 독려했다.

 

그렇게 나는, 회사 입사 4년차에 본부장이 되었다.

 

5. 급격한 변화 (4년차)

본부장 제의를 수락했으나 다른 조직의 변동사항 등으로 공식적인 발표는 늦어지고 있던 시점에, 새로이 배정한 팀장들과 그룹장과 식사 자리가 있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을 팀장으로 정했는지, 어떤 팀장이 됐으면 좋겠는지, 앞으로 잘해보자 등... 좋고 좋은 얘기만 오고간, 그런 자리였다.

 

그리고 공식 발표를 일주일 남겨둔 시점, 회사에서는 돌연 그룹장을 해고했다.

나름의 이런 저런 이유들이 있었지만 여기에 적긴 어렵고.... 

 

대표님은 나에게 따로 전화해 그간에 있었던 일들과, 그룹장에 대해 실망한 점, 내가 그룹장에게 가진 기대감 등에 대해 물어보고 설명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무슨 일이든 다 나름의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고... 이해는 되지만 당시 나는 공감할만한 심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조직체계와 관련된 부사장님께 따로 전화해 그룹장 해고와 관련된 여파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번복되지 않았다.

 

나는 대표님에게 따져물었다. 이럴거면 날 왜 본부장으로 앉혔냐고.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고.

본인이 많이 돕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 대답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대신 자주 하소연하고, 자주 칭얼거릴거라는 경고(?)를 했다.

 

6. 그리고 지금 (5년차)

휴직 후 복직할거라던 전 본부장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예상보다 휴직기간이 길어졌고, 아직도 정상근무는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 사이 나는 본부장을 맡은지 8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경고(?)했던 것처럼 대표님께 하소연해가며 나름 잘해보겠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주에만 4명이 퇴사하겠다고 면담 요청을 해왔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각자의 이유가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각자 퇴사 준비를 한 거지만 하루 차이를 두고 4명이 연달아 면담 요청이 온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했다.

그러나 나도 그 사이 나름 많은 일을 겪었고, 개인은 개인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흘러가며, 4명의 공백은 누군가 또 채울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젠 예전만큼 감정 기복이 심하다거나, 스트레스 받지는 않는다. (가끔은 이정도로 고요한 감정이 무섭다. 난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면담했던 내용 중 공통 의견은 매니징이었다. 4명 중 한 명은 퇴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 논외고, 3명 모두 한 팀에서 나왔는데, 팀장이 바쁘다, 소통이 적다 등 매니징 이슈가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는 내 숙제로 남겨져있다.

 

근데 또... 이런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만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우린 적어도 매너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각오하고 있는 건, 아직 우리 회사는 연봉협상을 진행하지 않았다. 아마도 연봉협상까지 하고 나면 또 퇴사자가 나올 것이다. 어쩌면 팀장 중에서도 퇴사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난 이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대비하고 있다.

 

7. 고민중인 미래

30명이 넘는 인원의 본부장으로 8개월간 지내면서, 사실 coding은 손을 놓은지 오래다. 다시 분석 실무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30대 초중반인 나이에, 분석가라면서, 벌써 coding에서 손을 뗀 건 너무 이르다는 건 잘 알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눈앞에 닥친 업무가 엑셀, ppt가 되면...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 본부와 관련된 기획을 진행하면서, 문득 기획 업무에 흥미가 생겼다. 아직 회사 내의 누구하고도 진지하게 얘기해본 건 아니지만, 기획팀 등 조직을 옮겨 직무를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다. (물론 지금 내가 맡고 있는 본부장 자리의 대안이 안 보이기 때문에 C-level에서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회사를 옮기는 것보단 직무를 옮기는 게 더 쉬우니까... 그리고 적어도 난 이 회사의 팀장급 이상은 전부 알고 있으니 업무 협조 받기도 편하고, 내 능력도 다들 잘 알고 있으니 혹시나 실수해도 이해해줄거고...(줄이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래서 요즘은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지금 누군가에게 이 얘기를 하면 다들 멘탈이 탈탈 털릴테니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연봉협상 후 한차례 태풍이 휘몰아친 뒤...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이직 고민은 하지 않는다. 회사에 애정이 있기도 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 싶은 나름 개인적인 챌린지도 있고, 이런 저런 시도를 많이 해보려고도 하고, 위에서 내 얘기를 들어주려는 노력이나 들어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있고... 비록 입사 이후 단 한 해도 내 연차를 다 소진해본 적은 없지만... 그건 나에겐 불만사항은 아니니까...

 

내가 이직하게 된다면 타이밍은 언제가 될지, 어떤 직무로 가게 될지 사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분석가로 입사했지만 분석가로만 일하지 않았고, 영업미팅도 다녀보고 마케팅 세미나도 해봤다. 없는 체계를 만들어본 적도 있고 이미 존재하는 체계는 수용하거나 개선하려는 고민도 해봤다. 

 

난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찾고 있다.